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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S 다이어리

[추천도서] -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쳐박지 마. 나는 나야 - Go (가네시로 가즈키)

by 책연필씨 2021.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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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미리 밝혀두겠는데, 이 소설은 나의 연애를 다룬 것이다. 그 연애는 공산주의니 민주주의니 자본주의니 평화주의니 귀족주의니 채식주의니 하는 모든 '주의'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렇게 책이 시작한다. 물론 주인공 스기하라의 연애 이야기이지만 Go는 재일 한국인 스기하라가 겪는 재일 한국인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한다.

 

스기하라는 복서 출신의 조총련 소속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중학교까지는 조총련 소속의 민족 학교에 다닌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하와이에 가기 위해 국적을 한국으로 바꾸자, 스기하라도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위해일본고등학교에 진학한다.

 

민족 학교에서의 친구 정일, 야쿠자의 아들인 가토를 제외하면 친구도 없고 학교에서 말 걸어주는 이도 없지만, 아버지에게 복싱을 배운 덕에 주먹 하나는 전적 무패를 자랑하는 학교 제일이다. 그래서 세상 쿨하게 남 눈 신경쓰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살아가다가 사쿠라이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깊어져 사쿠라이에게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고백한 순간 스기하라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아빠는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은 피가 더럽다고 했어.”

 

너무나 많이 당해왔던 차별과 편견이라 충격은 받지 않지만, 사쿠라이와는 멀어지게 된다. 게다가 거의 형제와 같은 정일이 재일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 일본인 학생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최초의 장편소설이자 나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재일교포에게 이 상을 수여한 것은 가네시로 가즈키가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작가는 재일 한국인이라는 표현보다는 한국계 일본인이라고 자신을 표현한다. 이 책의 주인공 스기하라에게도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나 자신의 정체성이 중요할 뿐.

 

 

 

 

일본 내에서 재일 한국인이나 재일 조선인은 외국인 등록법에 따라 엄청난 차별을 받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 한국인(또는 재일 조선인) 작가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주제로 글을 쓸 때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네시로 가즈키는 무거운 주제도 위트있는 표현과 통통 튀는 분위기로 얼굴에 웃음을 띄게 한다. 이야기의 흐름도 시원시원하다. 그렇다고 주제를 결코 가볍게 대하지는 않는다. 유쾌한 분위기로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는 것이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국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거야. 네 녀석은 어느 나라 국적을 사고 싶으냐?”

 

“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 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

 

“이런 어둠을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어둠을 모르는 인간이 빛의 밝음을 얘기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니체가 말했어. '누구든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오래도록 나락을 들여보다보면 나락 또한 내 쪽을 들여다보는 법'이라고 말이야. 그러니까 조심하라구.”

 

스기하라의 아빠가 한 말이다. 누구보다 힘든 인생을 살아오셨을 텐데,, 절대로 약해지지 않고 유머러스하며 아들과도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멋진 아빠다.

 

‘이 망할 영감탱이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독학으로 마르크스와 니체를 읽어냈다. 철근 콘크리트 같은 몸과 얼음처럼 차가운 두뇌로 줄기차게 싸워 이 터프한 나라에서 살아남았다. 나는 이 망할 영감탱이가 왜 국적을 한국으로 바꿨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다. 하와이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였다. 나의 두발을 옭아매고 있는 족쇄를 하나라도 풀어주려 한 것이다.’

 

“귀찮으니까 차라리 도중은 다 생략하고 오직 한 사람의 여자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잖아. 그리고 오직 한 사람의 여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국적도, 무슨무슨 인이라는 구별도 없었어. 우리는 우리들 자신을, 그 자유로웠던 시대의 그냥 자손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국적이라든가 민족을 근거로 차별하는 인간은 무지하고 나약하고 가엾은 인간이야. 그러니까 우리들이 많은 것을 알고 강해져서 그 인간들을 용서해주면 되는 거야.”

 

“내 말해두는데, 나는 재일도 한국인도 몽골로이드도 아냐.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좁은 곳에다 처박지 마. 나는 나야. 아니, 난 내가 나라는 것이 싫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잊게 해주는 것을 찾아서 어디든 갈 거야.”

 

 

 

 

고등학생이지만 멋진 녀석이다.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스기하라의 삶은 확고한 정체성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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