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고전에 빠져, 책장에 꽂혀있는 찰스디킨스의 작품들을 손때가 닳도록 읽고 또 읽곤했다. 하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이라도 하듯 시대상과 많이 다른 고전들로부터 거리가 멀어져갔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책에서 찰스 디킨스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고, 이 작품을 읽어보기로 했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골랐다고 해도 무방한데,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작품일 줄이야. 그리고 제목과는 달리 오래된 골동품 상점은 거의 초반 빼고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런 제목을 붙인 이유가 있을텐데.
꽤 두꺼운 책이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었다. 다른 고전들은 말도 난해하고 이해하기 힘든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찰스 디킨스의 특징인 것 같다.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동화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들고. 비유적이거나 풍자적인 표현도 많이 나오는데, 주석이 제일 뒤페이지가 아닌 각 페이지 아래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다.
이 이야기는 런던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할아버지와 살아가던 한 어린 소녀 ‘넬’이 ‘퀼프’라는 악당으로 인해 아주 힘든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어린 소녀가 도박 중독에 걸린 늙은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자신은 병들어가면서도 끝가지 천사같은 마음으로 주변에 감사하다가 죽어간다.
“깊은 애정과 정직함으로 가난과 고난에 맞서 싸우고, 온갖 불확실함과 위험을 혼자서 의연히 견뎌 내다니! 아직 세상은 영웅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구나. 가장 강인한 사람은 세상에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교장’이 ‘넬’을 다시 만났을 때 ‘넬’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속으로 한 말이다. ‘넬’에 대해 너무나 잘 표현한 말인 것 같다.
“무슨 일이야?” 넬이 아이를 달래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니?”
“아직 안 돼!” 아이가 넬의 목을 더 힘껏 껴안으며 소리쳤다. “안 돼, 안 된다고! 아직 안 돼.”
의아하게 쳐다보던 넬이 아이의 머리를 넘겨주며 입을 맞추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넬은 안 돼.” 아이가 소리쳤다. “우리는 그들을 볼 수 없어. 그들은 절대 우리와 놀아 주지도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잖아. 그냥 지금 그대로 곁에 있어 줘. 그편이 훨씬 나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넬이 말했다. “다시 얘기해보렴.”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러는데,” 아이가 넬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넬이 천사가 될 거래. 새들이 다시 노래하기 전에. 하지만 넬은 천사가 되지 않을 거지? 그럴 거지? 하늘나라가 좋긴 하지만 날 두고 가지는 마, 넬. 제발 떠나지 마!”
눈물이 엄청 흘렀던 부분이다. 그 이후 넬과 아이의 대화도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이제야 좀 평화를 찾았는데.
찰스 디킨스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에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선량하고 정직하지만 힘없는 ‘키트’, 돈은 있지만 극악무도한 난쟁이 ‘퀼프’, ‘퀼프’의 비위나 맞추며 선량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변호사 ‘브래스’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의 악행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룬다.
그 당시는 ‘빈곤의 원인은 개인의 도덕적 문제나 나태에 있다고 보며, 빈곤과 사회구조는 무관하다’고 여기는 풍조였는데,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도 찰스 디킨스는 아동노동의 참상(올리버 트위스트)이나 사법 제도의 문제점(황폐한 집), 자본가와 공리주의의 문제(어려운 시절) 등을 작품에서 비판했다고 한다.
“넬이 살아 있나요?”
1841년 겨울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전례 없이 많은 사람이 모인 뉴욕의 부두에서 누군가가 『오래된 골동품 상점』의 마지막 호를 싣고 온 영국 배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2007년 많은 신문은 역사적으로 이 소동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해리포터의 마지막 이야기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이 출간되었을 때뿐이라고 했다.
책 뒤표지에 실린 이 글을 보고 처음엔 이해를 못했다. 왜 사람들이 책 결말을 모르지? 그런데 알고 봤더니, 이 글은 그 당시 잡지에 연재가 된 글이란다.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엄청난 독자들을 모은 작품이기도 하고.
힘없는 어린이나 흑인 노예들을 참혹하게 부리던 시대 사람들이 어린 ‘넬’의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흐느꼈다고 한다. 더 잔혹하고 더 심사가 사나운 사람일수록 더 열광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다. 비정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천사같은 ‘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다고 참회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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