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작가의 장편이다.
지난번에 읽은 『행성어 서점』이 이런저런 소재들을 툭툭 던져놓은 것 같더니, 그 중에서 몇 가지가 발전되어 이 책이 탄생한게 아닌가 싶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스트로 인한 대멸망의 시대를 한차례 겪고 재건된 지구. 더스트생태연구소의 식물생태학자 아영은 어느 날 해월이라는 한 폐허 지역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가 빠르게 번식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현장으로 향한다. 단순 이상 증식 현상이려니 생각하던 아영은 그 식물들이 번식해있는 곳에서 밤에 푸른빛이 목격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이희수 노인의 방치된 정원에서 보았던 푸른빛을 떠올린다.
아영을 식물생태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던 그 덩굴식물. 왜 갑자기 그 덩굴식물들이 아무것도 없는 해월에서 증식하게 된 것일까? 그것도 초기 유전자를 그대로 유지한 채로...
모스바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다가 더스트 시대에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렸던 아마라, 나오미 자매에게까지 닿게 된 아영은 그동안 잘 몰랐던 더스트 시대의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더스트로 멸망해버린 지구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살아 지낼 수 있었던 프림 빌리지. 더스트로부터 보호해줄 돔 없이 그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며 이 소설은 총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모스바나
2장 프림 빌리지
3장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작가님의 글답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소 생소한 주제이고 환경일지라도 확실히 글에 빠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거기에 따뜻함까지...
요즘처럼 미세먼지도 난리고 환경오염도 심각한 시대가 계속되면 정말 저런 미래가 오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런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글이 아닌, 결국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다.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애틋한 마음, 사람이기에 가질 수 있는 숭고한 마음 같은...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 중에서
“언제나 의심하고, 매일 서로에게 물었어요.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프림을 떠난 이후 우리는 어디에서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프림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고 있었죠. 어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시절이 그리웠고, 그것만이 우리를 잠시나마 과거로 되돌려 보내주었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모스바나가 무엇인지가 제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에요. 저는 그냥 그곳에서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거예요.. 프림 빌리지를 다시 만들 수 없다는 것도, 그런 곳은 오직 프림 빌리지 뿐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식물들을 심었어요. 오직 그것만이 저를 살아가게 했으니까요.”
본문 중에서
김초엽은 세상을 구해내고야 마는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탁월한 개인, 위대한 발견, 숭고한 희생이 아니라, 서로를 기억하며 지킨 작은 약속, 매일을 함께하는 동안 다져진 우정, 시간에 깎여나가지 않고 살아남은 사랑을 말한다.
- 황예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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