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이치조 미사키
한 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책이었다.
오랜만에 아주 청량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를 만났다.
책 표지의 느낌이나 제목을 접했을 땐 일본 특유의 흔한 청춘 러브스토리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꽤 재밌었다. 몰입도도 좋았다. 오랜만에 어린 청소년들의 사랑에 눈물도 펑펑 쏟았다.
내 인생은 무미건조했다. 히노 마오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날 모르겠지만, 사귀어줄래…?”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하게 된 고백.
그런데 예쁘고 웃음 많은 그 아이,
히노는 조건을 내걸고 이 고백을 받아들인다.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가짜 연애.
히노를 향한 마음이 점점 커져가 더는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나는 병이 있어.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하는데,
밤에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려.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날마다 기억을 잃는 그 애와 매일 새로운 사랑을 쌓아가는 날들.
나는 과연 이 아이의 내일을 지켜줄 수 있을까?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과 엮이지는 않았지만, 선량해 보이는 사람이 눈앞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는 아이는 아닌 도루.
“우리 아버지가 그러더라. 잘난 사람이 되는 것보다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게 훨씬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가미야 넌 남들이 말하는 잘난 사람보다 훨씬 훌륭해. 이런 말은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고생하는데도 비뚤어지지 않았어. 이것도 아버지가 한 말인데, 고생한 사람은 대개 비굴해지거나 성격이 나빠진대. 그런데 넌 다정하거든. 아주 많이. 아주 아주 많이.”
이런 다정한 마음씨를 가진 도루가 하루하루 일상의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히노를 위해 결심한다.
히노는 밤에 잠이 들면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쌓아 올릴 수 없다. 대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얼마나 괴로울까.
자기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미래까지 빼앗겼다.
그렇다면 내일의 히노가 조금이라도 일상을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히노가 쓰는 일기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 채워주자.
그것을 읽고 내일의 히노들이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덜어줄 수 있도록.
새롭고 즐거운 일상을 시작하자. 그게 바로 희망일 것이다.
안 그래, 히노?
시종일관 시무룩하거나 눈물을 짜는 분위기로 이어지는 소설은 아니다. 고등학생들답게 장난끼도 많고, 각 등장인물들의 사연도 있지만 꿋꿋하게 헤쳐 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무겁지않고 밝고 착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고등학생다운 풋풋하고 싱그러운 이야기들의 전개도 오랜만에 반가웠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잊어버리다니, 일기에만 남길 수 있다니, 그런 건 싫었다. 그렇지 않나. 인생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어떤 순간도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그걸 소중히 한다. 보물로 삼으려고 한다.
그런 걸 기억할 수 없다니 너무한다. 너무 슬프다.
“사람은 원래 잊어버리게 마련이야. 하지만 괜찮아. 어떤 기억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난 그렇게 믿어.”
혹시 이 애는 내 기억장애를 알고 있는게 아닐까.
알면서, 눈치챘으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닐까.
“괜찮아. 난 앞으로도 네 바로 옆에 있을 테니까.”
히노는 이런 도루의 노력으로 잘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실감은 없지만 오랜만의 청춘소설이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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