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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S 다이어리

[추천도서] 천 개의 파랑 – 천선란

by 책연필씨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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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후기를 전혀 읽어보지 않고 단지 제목만으로 고른 책인데 썩 괜찮았다.

물론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보긴 했다.

2019년 대상을 받은 김초엽 작가의 책도 괜찮았기에 아마 기대를 하지 않았나 싶다.

 

 

 

콜리는 경마를 위해 만들어진 휴머노이드 기수 로봇이다. 인지와 학습능력이 탑재된 칩이 잘못 삽입되어 실수로 만들어진 콜리는 다른 기수 로봇들과는 달리 경주마 투데이와 함께 호흡하고 교감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콜리이지만 투데이가 뛸 때 행복을 느끼는 것도, 연골이 다 닳아 아파하는 것도 인지할 수 있는 콜리는 투데이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스스로 낙마한다. 땅에 떨어진 충격에, 다른 말들의 발굽에 하반신이 다 망가진 콜리는 교체되거나 버려지기 위해 기다리던 중 연재를 만나게 된다.

 

 

 

 

 

로봇 천재인 연재를 만나 연재네 집에 살며 각자의 슬픔과 외로움을 가진 연재네 가족과 어우러지며 인간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간다. 너무 일찍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꿈을 접은 채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엄마 보경,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을 못써 아주 비싼 로봇다리가 아니면 평생을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야하는 은혜,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언니를 도와야하고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않은 채 마음의 문을 닫은 연재. 감정 없는 콜리와 대화하며 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연재네 가족. 콜리로 인해 더 위로받고 자신의 감정을 더 알아간다.

 

 

 

 

그리고 단지 달리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안락사 위기에 놓인 투데이를 하루라도 더 살리기 위해, 하루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주기 위해 콜리와 연재, 은혜와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처와 마음도 돌아보게 된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경은 콜리의 질문을 받자마자 깊은 생각에 빠졌다. 콜리는 이가 나간 컵에서 식어가는 커피를 쳐다보며 보경의 말을 기다렸다.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보경은 콜리가 아닌 주방에 난 창을 쳐다보며 말했다.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의 눈동자가 노을빛처럼 반짝거렸다. 반짝거리는 건 아름답다는 건데, 콜리 눈에 그 반짝거림은 슬픔에 가까워 보였다.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그리움이란 그런 것이구나. 콜리에게도 그리워할 순간이 생겼다. 투데이와 주로를 달릴 때다. 투데이가 행복해하는 진동을 느끼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다리를 고치고 싶다는 건 아니야. 물론 고치게 된다면 좋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아. 꼭 같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투데이가 은혜의 머리에 코를 박고 킁킁, 바람을 뿜었다.

“그저 불편하니까 그렇지. 이 바퀴로는 오를 수 없는 계단과 밟지 못하는 땅이 너무 많으니까. 기술이 발전해서 로봇이 말도 타는데 왜 나는 아직도 이걸 타고 있는지 몰라. 안 그러니?”

은혜가 투데이의 얼굴을 두 팔로 감싸 끌어안았다. 억울했다. 자신이 억울한 것인지 투데이의 억울함을 대리로 느끼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은혜는 가슴이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잇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우리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에 가서 남들에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당당하게 보여주라고 하는데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있지, 나는 그냥 여행을 다니며 살고 싶어. 카메라 들고 밟지 않은 땅이 없을 만큼 아주 많이.”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엣 사람만 이렇게 잔인한 거 같아요.”

(…)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언젠가는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시기가 올까 봐 두려워요.”

복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민주가 잠자코 뒷말을 기다렸다.

“물론 빠른 시일 내에는 아니겠지만 아주 먼 미래예요, 짐승이 이 행성을 포기하게 되는 거요. 이곳에서는 더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동물의 유전자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좁은 울타리에 갇혀 착취당하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유전자가 생존의 수단으로 죽음을 택할지도 모르잖아요.”

복희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기술의 발달과 멸망의 속도가 같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매일 뉴스에 나오는 새로운 기술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만큼만, 사라져가고 학대받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나눠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잇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대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전형적인 SF 소설과는 좀 다르다. 휴머노이드 콜리가 등장하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외로움, 행복 그리고 위로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소 전형적인 SF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간 실망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과학문학상 수상작이지만 SF적인 요소라면 인지능력을 갖춘 콜리가 전부이니까.

 

인지능력을 갖춘 로봇과 교감하는 이야기는 영화나 다른 소설에서도 많이 나와서 상투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매번 감동적인 부분이나 여운이 남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다. 따뜻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읽어볼만한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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