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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늙은 폐지 압축공의 역설적 고독 - 너무 시끄러운 고독 ( 보후밀 흐라발 )

by 책연필씨 2021.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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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1 孤獨 명사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고독의 사전적 의미이다. 이러한 고독이 시끄럽다니. 이 아이러니는 어디서 온 것일까.

 

 

 

체코의 대표작가 밀란 쿤데라는 흐라발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체코 최고의 작가'라고 칭하며 그에게 존경을 표했으며, '프라하의 봄' 이후 그의 작품이 모두 금서로 분류되며 탄압을 받음에도 다른 작가들처럼 망명하지 않고, 끝가지 체코에 남아 체코어로 작품을 집필해 그는  '체코 소설의 슬픈 왕'으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가였다.

옮긴이는 “그는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았던 작가라기보다 살아 있기에 글을 썼던 사람이며, 그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매혹적인 실존의 기록이다.”라고 전한다.

130쪽 책의 두께와 대비되는 책의 깊이는 진한 여운과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책으로 하여금 인간만의 사유와 통찰을 행복감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기계의 등장으로 인해 변화해버린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고뇌한다. 거대한 폐지 압축기는 인간에게 효율성과 여유를 주었지만, 영혼을 파괴하기도 한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한탸는 35년동안 흡사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더러운 지하실에서 폐지 압축공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도, 특별한 취미가 있지도 않은 그러나 책으로부터 지식을 흡수하며 살아온 은둔형의 인간이다.

하지만 자기 일을 너무도 사랑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 폐지들 속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읽고, 그 책들로 자기만의 꾸러미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냄새나고 아무리 더러운 상황에서도, 한탸는 책만 펼치면 다른 세상으로 빠져든다. 거기서 예수도 만나고 노자도 만날 뿐 아니라 다른 철학가들도 만나 그들의 사상을 발견하고 이해하며 행복해한다. 독서하고 사유하는 인간 만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다 현대식 거대 압축기가 설비된 폐지 처리장을 보게 된다. 기계와 컨베이어로 이루어진 작업 환경에, 책의 내용은 전혀 보지도 않은 채 책을 그저 종이 쪼가리 취급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새로운 작업장에서 폐지가 아닌 백지를 꾸려야 하는 일에 절망한 한탸는 스스로 자신의 낡은 압축기로 들어가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아이러니한 고독을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탸에게 수많은 책들과 폐지들은 노동의 대상인 동시에 새로운 삶으로 이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그 속의 수많은 지식과 세상의 수많은 모습 속에 그는 홀로 있다. 그리고 한탸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속에서 고독을 느낀다. 수많은 지식들 속의 한탸의 고독에서 현대인들의 군중 속의 고독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그 고독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 안식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아직 인간적이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존재한다.

 

이 구절을 계속 곱씹어 본다.

 

그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기도 하고, 정치적이며 철학적인 책이다. 또는 책을 함부로 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한탸의 독백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대를 반영한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작품이지만 담담하게 읽힌다. 한탸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나 또한 책을 사랑해서일 것이고, 작가 보후밀 흐라발이 떠올라서였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꼭 한탸를 만나보기를 간절히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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