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이 새로 출간될 때면 거의 항상 읽는 편이다. 사람의 눈이 아닌 동물이나 외부의 입장에서와 같이 다른 시각으로 글을 쓰는 것도 마음에 들고, 디테일한 묘사를 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점도 참 굉장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작품 『문명』은 솔직히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집어 들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마자 고양이의 음성이 들리길래(?), 혹시 이거 지난번 『고양이』라는 작품이 이름을 바꿔 다시 나왔나 하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읽어보니 『고양이』와 연결되는 작품이었다.
주인공 ‘바스테트’는 흰색과 검정색의 얼룩무늬를 가진 암고양이다.. 자기 우월감도 높고 행동력도 뛰어난, 명실상부한 고양이들의 대장이다. 그 옆의 ‘피타고라스’는 회색의 샴고양이인데, 이마에 제3의3 눈을 가진 아주 똑똑하고 지적인 고양이이다.
이번 작품 『문명』은 ‘티무르’라는 흰쥐가 이끄는 쥐 군단을 물리치고 무사히 남은 고양이들과 인간들, 다른 동물들을 지켜내기 위한 ‘바스테트’의 모험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는 이미 황폐해지고, 그런 상황에서 점점 쥐들의 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전염병이 창궐하고, 사람들이나 다른 동물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바스테트와 집사 나탈리, 피타고라스와 그 외 고양이 식구들과 어린 사람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는 쥐 떼들로부터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그래서 갖은 모험이 시작된다.
포위된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열기구를 만들어 이동하고, 도와줄 조력자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는 과정에서 다른 고양이 그룹, 돼지, 소, 개, 비둘기, 독수리 등 다양한 동물들을 만나게 된다. 모두가 다 나서서 도와주지는 않는 상황. 여러 가지 상황들을 헤쳐 나가며 바스테트와 일행의 모험이 계속된다.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겪고 여러 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바스테트는 점점 성장하고, 피타고라스와 같이 제 3의 눈을 가지게 되면서 더 많은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 그래서 바스테트는 단지 살아남는 것만이 아닌 인류 문명을 대신할 새로운 문명을 건설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종간의 소통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과연 바스테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당연히 좋은 방향의 결말을 예상했는데, 『고양이』, 『문명』에 이은 세 번째 시리즈에서 결말이 나오려나보다. 이번 『문명』 편의 결말은 희망으로 시작해 뜻밖의 상황을 접하는 상황에서 끝이 난다. 다음 시리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는...
작가는 바스테트와 다른 동물들의 입을 통해 <이 세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피타고라스’나 ‘티무르’는 실험동물이었고, 돼지들이나 소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고 길러지게 되었다. 그래서 인간을 놓고 ‘인간재판’‘인간 재판’을 벌이는 것이었다.
또한 동물의 시각에 빗대어 여러 가지 것들을 비판적으로 이야기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심각한 상황도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작가의 특징이 참 잘 드러나는 책인 것 같다. 바스테트와 나탈리, 피타고라스의 모험이 무사히 끝나길 기도해본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일이라면 하는 쪽을 택하렴. 했을 때 생기는 최악의 결과라 해봐야 그걸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거니까. 적극적인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던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투쟁을 두려워하는 건 천둥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건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둥이 쳐야 비가 쏟아지고, 비가 와야 식물이 자라고, 식물이 자라야 초식 동물이 살고, 초식 동물이 살아야 육식 동물이 살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자연의 이치를 내게 깨닫게 해 준 피타고라스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맙다.
투쟁의 법칙은 만물의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건 평화주의가 아니라 몰지각함이다.”
“갑자기 아득한 비현실감이 느껴진다. 내가 아무리 바른 판단을 내려도 주변의 편협한 존재들이 이해를 못 하면 무슨 소용인가.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어리석은 존재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버티려면 앞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게 분명하다.”
“<네 행복이 다른 사람의 결정에 좌우되는 순간 불행은 시작이야>라고 엄마가 말하지 않았던가. (...) 절대 남이 내리는 결정에 좌지우지되지 말라고, 나와 관련된 결정에는 반드시 내 의사를 반영시켜야 한다고 엄마는 가르쳐 주었다. 요행을 바라지도 상대의 친절함을 기대하지도 말라고, 도리어 상대가 내 선택과 결정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삶은 골칫거리들이 줄줄이 엮인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행은 강장제 같아서, 존재에 활력을 불어넣고 우리를 진화하게 만든다. 고통은 감각을 벼리고 감춰져 있던 우리의 능력을 드러내 준다.
평온하기만 한 삶을 살다 보면 정체되고 말 것이다. 적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가진 용기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된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쉽고 편하기만 한 관계는 신비감과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때로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혀도 결국 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자, 그 혜안을 바탕으로 조화로운 해결책을 제시할 줄 아는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거야. 그게 세상의 이치란다. 과거의 관습에 매몰되는 자는 절대 상상력을 가진 자를 이기지 못해.”
“앵무새를 쳐다보자니 문득 나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모두 종간의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의 시작은 고양이와 인간이었지만 나중에는 개, 돼지, 소, 독수리로까지 확대됐지. 어떤 측면에서는 전쟁이 일종의 카타르시스 작용을 한다는 생각도 들어. 전쟁이 터지면 과거의 습속에만 집착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고, 결국 우리는 낯선 존재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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