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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S 다이어리

[추천도서]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by 책연필씨 2021.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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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나 기자 출신의 칼럼니스트로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잘 나타내 주는 것 같다. 사회 비평에 대한 이야기지만 딱딱하지 않고, 어떤 파트들은 짧은 소설처럼 쓰여 있어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다시 한번 우리 현실을 되짚어보게 하는 책이었다.

 

 

 

 

 

아무도 미끼를 물지 않았다

 

““그래, 내 인생을 누가 대신 책임지겠어? 내가 책임져야지.”

‘개인의 윤리’로는 옳을 수 있으나 ‘사회의 윤리’가 되면 전혀 딴 얘기가 된다. “누가 대신 책임져주느냐?”는 반문이 사회 윤리로 굳어지면 힘 있는 자가 모든 걸 먹어치우는 약육강식의 세렝게티 초원이 펼쳐진다. 누가 미끼에 걸려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책임을 당사자가 지라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잔인한 요구다. 그 요구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을 교묘하게 은폐시킨다.”

 

“한없이 약한 인간도 악마가 갖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가족, 친구, 사람에 대한 마음이다. 오롯이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악에 무릎 꿇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인간이란 한계는 오히려 구원이 된다.”

 

 

 

 

 

악의 낙수 효과

 

“악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악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다. 위에서 물이 넘치면 아래로 내려가듯이 악은 계속해서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흘러내린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사에게 되돌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부하에게 내려간다. 스트레스 질량보존의 법칙일까.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대상은 불특정 다수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어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들은 저 멀리,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그들은 구속되지도, 재판에 넘겨지지도 않는다. 그들은 범죄와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의심하라,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자신만의 기억을 위해 싸울 때 당신은 인간답다

 

“두려움은 노예제의 작동 원리입니다. 한없이 불안하게 하고, 두렵게 만드는 것이 노예를 지배하는 방법입니다. 낙오하면 어떻게 하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대기업에 못 들어가면 인생 망하는 거 아니야? 이런 불안감은 실은 별게 아닐 때가 많습니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습니다.”

 

“한번 노예의 마음이 되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않게 됩니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것만이 분노조절장애가 아닙니다. 분노가 너무 잘 조절되는 것도 분노조절장애입니다. 보일러가 섭씨 20도에서 30, 40도로 치솟는 것도 문제지만, 20도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는 게 인간입니다.”

 

“기억의 숫자가 많을수록 건강한 사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한 기억들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대 그 사회가 건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니까요.”

 

“모든 건 당신이 결정할 몫입니다. 다만, 의미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 세상과 마주 서야 하지 않을까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렵더라도. 정확하게는 상황이 불안하고 두려울수록 말입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고통받은 만큼만 진실입니다. 그것만이 진실입니다.”

 

 

 

 

 

지더라도 개기면 달라지는 것들

 

“패배를 실패로 착각해선 안 된다. 패배가 상대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라면 실패는 나와의 싸움에서 진 것이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서 졌다면 실패한 게 아니다. 패배한 것이다.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겼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성공이냐, 실패냐를 정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누구도 나 대신 실패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

 

“개기는 것은 불필요한 행위로 보인다. 개겨봤자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개겨서 과연 달라지는 게 없는가. 달라지는 게 분명히 있다. 개기는 사람 자신이다. 개기면서 결심이 단단해지고 확고해진다. 다시 싸워야 할 때 웬만한 충격엔 흔들리지 않는다. 실패의 의미도 달라진다. 실패했을지언정 원칙을 지키고 주장함으로써 가치 있는 실패가 된다.”

 

 

 

 

 

좀비 공정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부 평가나 승진과 관련 없는 ‘쓸 데 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러한 좀비 공정은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누구든 좀비 공정 속에 집어넣으면 제시된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게 된다. 변혁을 꿈꾸지도, 반란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당신은 어디 있었나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들이 거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주기도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를 바라고 희망한다. 그 악이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오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위험을 인식하고 늘 깨어있지 않다면, 내부의 악과 끊임없이 싸우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마와 손을 잡고 있을 것이다. “난 내가 할 일을 했다”라고 말하며.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라고 변명하며.”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

 

“살던 대로 살기 싫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처음엔 좀 더 민감한 사람들부터 기존의 방식을 거역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제와 같이 살기 싫어지면 그때부터는 도저히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세상이 뒤집힌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향해 ”이젠 싫어졌다 “고 말하는 이들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지금과 다른 세상을 여는 키워드는 이대론 살기 싫다고 외치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에 어깨를 내주는 ’ 연대‘다.”

 

 

 

 

 

하찮아지느니 불편해지려고 한다

 

“한 젊은 회사원이 “직장에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나쁜 일을 안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공개 대담에서 만났던 기자 지망생이 떠올랐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일까. 한 참석자가 조언했다. “본인의 캐릭터를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잡으면 돼요. 일단 캐릭터를 그렇게 잡으면 누구든 쉽게 어떻게 못 해요. 아, 물론 사장되고, 부사장 되기는 어렵겠죠.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는 올라갈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겁날 게 없어요.”

그는 대기업 부장으로 있다고 했다. 어느 곳에나 현자는 있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그 많은 모순 속에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분명한 자기 기준이다. 자기 기준이 있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아무리 힘 있는 사람이 뭐라고 압박해도, 나 자신의 욕망이 뭐라고 유혹해도, 때로는 흔들리면서도, 가야 할 길을 간다. 중간에 경로를 이탈하더라도 내비게이션이 다시 경로를 재설정하듯이, 자기 기준만 잃지 않으면 끝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스스로 착취하라 말하는 시대에 산다는 것

 

“‘개인 사업자’는 멋지지만 무시무시한 단어다. ‘싫은 소리 듣지 않고 내가 할 일만 하면 된다’는 기쁨은 잠시뿐이다. 개인이 하는 사업이니, 일어나는 모든 일은 사업자 본인의 책임이다. 시간은 그야말로 돈이요, 목숨이다.”

 

“‘긱 이코노미’가 무서운 건 스스로를 착취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를 고용한 사업자도 나고, 내가 고용한 근로자도 나다. ‘디지털 기기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일하고, 프로젝터(건) 별로 수수료를 받는다.’ 자유롭게 일하는 것 같지만 전혀 자유롭지 않다. 사실상 강제적으로 이뤄지는 저임금 중노동일 따름이다.”

 

“철학자 한병철의 <피로사회>는 긍정성 과잉의 성과 사회가 자기 착취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이다.” 자기 착취는 철학적 사유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현실로 우리 앞에 당도해 있다.”

 

“각자도생은 거짓말이다. 각자도생해도 살길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살길을 도모하려고 해도 도모가 되지 않는다. 길을 한번 잘못 들어서면 죽는 순간가지 그 길을 벗어날 수 없다.”

 

“‘너 자신을 착취하라’고 요구하는 시대에 함께 연대해 맞서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정치요, 민주주의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이 많이 언급되면서, 잊혔던 그 사건들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한번 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에 대해서도 그리 당연히 여길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의아했는데,

 

 

 

 

 

다 읽고 나니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리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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