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은 서른 살도 되기 전에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서정 시인으로 입지를 굳힌다. 그의 시는 발표될 때마다 화제를 낳고, 그의 시가 실린 잡지는 책방에 나오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뒷날 백석의 명편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을 실은 잡지 《학풍(學風)》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시인들은 과연 얼마나 이 고고한 시인에 육박할 수 있으며, 또 능가할 수 있었더냐.”라고 백석을 극찬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중에서
이 책은 백석으로 알려진 시인 백기행의 이야기이다.
정확히 말해서 김연수 작가님이 상상하는 백기행의 이야기이다. 백석 시인은 광복 후,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귀국했다가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북한에 머물게 되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월북시인이라는 딱지가 붙은 채 작품이나 인물 소개도 금기시되었다고 한다. 1950년 이후 백석은 시인 활동보다 아동문학 작가, 러시아 문학 번역가로 활동했고 1960년대 몇 편의 작품 발표 후 백석은 죽기 전까지 작가로서 활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소망했으나 이뤄지지 않은 일들, 마지막 순간에 차마 선택하지 못한 일들, 밤이면 두고두고 생각나는 일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고 소설이 된다.
…
그러므로 이것은 백석이 살아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죽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음속에서 놓지 않았던 소망에 대한 이야기다.”
- 김연수
사상의 강요로 시를 쓰지 못하고 삼수 협동조합으로 떠나 육체노동을 하게 되는 백석 시인의 생을 김연수 작가님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담담하게 읽히면서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느끼고, 시에 대해서도 한 번쯤 더 생각해보게 만든 글이었다.
“조선어로 비를 어떻게 부르나요?”
…
“비. 비는 이렇게 길게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그러자 벨라가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럼 바람과 바다는 어떻게 말합니까?”
기행은 제 손등을 당겨 입 앞에 대고 말했다.
“바람. 바람이라고 하면 이렇게 바람이 입니다.”
이번에도 벨라가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리고 바다라고 하면, 조선인들은……”
그는 손을 들어 어둠 속 동해를 가리켰다.
“저절로 멀리 바라보게 됩니다. 바다는 멀리 바라보라는 소리입니다.”
“‘물싸리 민솜대 바람에 흔들려/ 새하마노 들판에 여름이 온다’라고 쓴 시는 말맛이 좋았고,
어머니가/ 국시를 하는데/ 햇빛이/ 동골동골한 기/ 어머니 치마에 앉았다./ 동생이 자꾸 붙잡는다‘는 솔직하고 소박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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