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님의 글은 처음 접했다. 혈액암으로 아프고 나서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예전 가끔 TV에서 볼 때면, 꽤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직설적이고 거리낄 것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뭐 냉소적이었다고 할까?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확실히 생사를 오가는 큰 병에 걸리고 나서는 작가님 말대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좀 달라지신 듯하다. 제목 때문이었을까?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준 책이다.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나는 언제나 뭐든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할 수 없는 멍청이가 되고 말았다. 그런 인간은 도무지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것이다. 그런 인간은 오래 버틸 수 없다. 오래 버티지 못한다면, 삶으로 증명해내고 싶은 것이 있어도 증명해낼 수 없다. 나는 행복이 뭔지 모른다.…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 테다.”
‘혼자 힘으로 고아처럼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왔다’라는 표현에 가슴 한켠이 찌릿했다. 모두에게 이런 경험이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점점 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작가님의 글이 더 다가온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진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된다. 세상은 원래 이러저러하다는 거창한 결론에 심취하면 전혀 그와 관계없는 상황들을 마음대로 조각내어 이러저러한 결론에 오려 붙인 뒤, 보아라 세상은 이렇게 이러저러하다는 선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정작 소중한 것들을 하찮게 보게 만든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친다.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결심들을 잘 지켜내어 성과가 쌓이면 삶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
순간순간 작은 결심들을 실천에 옮겨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한 대목이다. 좋은 책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구절이지만 참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듯...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년이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마음이 앞섰다. 마흔두 살의 나는 점점 '그때의 나라면 지금 이렇게 안 할 텐데 바보같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나이 든다는 것은 과거의 나에게 패배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과 같다.”
나이가 들면서 안주하려는 경향. 나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항상 새로운 것에 관심 많고 무모할지언정 이것저것 시도해보려던 마음은 다 어디 갔을까...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그러니까 괜찮다. 찾을 수 없는 원인을 찾아가며 무언가를 탓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에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하자. 그러면 다음에 불행과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수습하고, 감당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다.”
그래, 벌어질 일이 벌어진 거다. 이것저것 탓해봐야 스트레스만 늘 뿐. 빨리 수습하면 마음도 빨리 추스를 수 있는 법!
“자기 삶이 애틋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자신이 오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사실이다. 누군가에 관한 평가는 정확한 기준과 기록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평가하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결정된다. 맞다. 정말 불공평하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와 같은 현실을 두고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그걸 해낸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한다. 반면 누군가는 끝내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한다.”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기초부터 파괴한다고 한다.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는 말. 꼭 기억하자.
“기댈 수 있는 신적 존재도, 제도적 안전장치도 없이 혼자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피폐해진다. 싸우기 위해 거칠어진다. 불신만 남는다.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사람들끼리도 상대를 증오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멋지고 빼어난 것들 덕분이 아니라 언제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선행들 때문에 구원받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스스로 구제할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가님이 해주는 말이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작가님이 이 글을 쓴 취지에 가장 적합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 가슴에 새겨 넣을 말이다. 한순간 한순간을 내 의지대로 살아가 볼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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