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중간 중간에 있는 원고지에 적힌 삐툴빼툴한 글씨체의 글들이 궁금해서... 다 읽고 나서는 이슬아 작가의 다른 책들이 너무 궁금해졌다.
모처럼 맘에 드는 에세이 작가를 찾았다.
92년생 젊은 작가인데 참 솔직하고 담백하게 글을 잘 풀어나가는 인상을 주었다. 다 읽고 나서 이 작가에 대해 찾아봤더니 참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글을 써 온 작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찾아가며 글을 쓰다니. 그것도 매일매일. 역시 좋은 글은 노력에서 나오는가 보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이 에세이집은 이슬아 작가가 글쓰기 교사로서 일하는 동안, 아이들과의 경험과 아이들에게서 느꼈던 감정들,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게 된 것들, 그리고 아이들의 아기자기한 글들이 실린 책이다. 이렇게 솔직한 피드백과 아주 작은 점도 찾아서 칭찬해주는 선생님과 글쓰기 수업을 한다면 즐겁지 않을까?
“아이들이 소년의 마음으로 쓴 소년의 글을, 벗어나려고 할 때 나는 복잡한 심정이 된다. ‘아마도 너는 이제부터 더 깊고 좋은 글을 쓸 거야. 하지만 마음 아플 일이 더 많아질 거야. 더 많은 게 보이니까. 보이면 헤아리게 되니까.‘ 속으로만 생각한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삶이었다고. 태어나서 좋은 세상이라고 학생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런 세상의 일부인 교사가 되고 싶다.”
중간 중간에 실린 아이들의 글도 너무 재밌고 좋았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에 웃음도 나고 고개도 끄덕여지는 오랜만에 아이들 세상을 들여다보는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제목 : 글쓰기 선생님의 패션>
열세 살 김온유
글쓰기 수업에 처음 와서부터 지금가지 가장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이슬아 선생님의 패션 스타일이다. 한두 번 정도 만났을 대에는 ‘치마나 타이트한 옷은 잘 안 입으시는군’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수업엔 뜬금없는 옷을 입고 오신다. 심장에 검이 박힌 느낌이 들 정도로 가장 특이했던 패션은 컷트 머리에 청색 멜빵바지였다. 슈퍼 마리오 느낌 나서 괜찮다고는 생각했지만 여수에 살면서 그렇게 파격적으로 입는 분은 처음 봤다. 또 이슬아 선생님은 솔직히 옷이 너무... 야하다. 꼭 후레시맨 역할극 하는 옷 같다.”
<제목 : 너에게 쓰는 인생 사용설명서>
열다섯 살 윤예영
(...)
일단 넌 절대 비키니를 입은 채 새침하고 예쁜 척하며 의자에 앉아있지 마. 넌 어른들에게 우르르 둘러싸여 사진을 찍힐거야. 네 뱃살 말이야. 가족이라고 너무 믿지도 말고 너의 그 가족이란 어른들이 네 다리 꼬고 앉아 뱃살이 접힌 그 사진을 할머니 집 거실에 붙여놓을 거니까. 그 사진을 니가 클 때까지 떼지 않고 명절 때마다 구경하는 것도 명심하고. 넌 아직도 너가 예쁘고 귀엽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거든. 너의 친구 얼굴과 네 얼굴을 비교해 봐도 알겠지만 말이야. 어른들이 귀엽다고 해도 믿지 말고. 넌 아마 그것 때문에 ‘난 예쁘다’라고 착각하고 있을 걸. 지금 내 엄마가 그러는데 아니래. 지금이 장족의 발전이라고 하는구나. 그래도 나중엔 예뻐질 거니까 걱정 말고.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기도 해. 우리 힘내자.
(...)
지금까지 내가 알려준 것 말고도 넌 많은 일들을 겪을 거야. 너가 내 성격과 같다면 실수도 많이 하고 모르는 것도 많을 거야. 애가 좀 어리바리해서 바보 같고. 그래도 괜찮아. 그걸 다 풀어나가다 보면 많이 성장해 있을 걸? 그럼 안녕.
<제목 : 물론 걱정하겠지만>
열다섯 살 허예련
(...)
그리고 정말 부탁이지만 남자애들의 팔은 그만 꺾어줘. 그 아이들이 절대 네게 맞는게 좋아서 맞아주고 있는게 아니야. 그거 네가 힘이 센거야. 너를 가녀리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의 할머니들뿐이라는 것을 항상 명심해. 네게 팔이 꺾인 그 애들과의 로맨스를 너는 꿈꾸게 될거야. 그러니 그대로 받아들여. 정말 아파서 소리 지른 것일거야.
<제목 : 코로나 이후 우리집에 생긴 변화>
열한 살 아리솔
내 생활이 꽤 많이 바뀌었다. 우선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덕분에 창피당할 일도 없고, 지루하게 앉아 있을 일도 없고, 친구 때문에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날 일도 없다. 대신 선생님이 보내주신 복사지와 수학책으로 집에서 공부를 한다. 학교를 안 다닌다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엄마, 아빠는 딱히 코로나 때문은 아니라고 해야 하겠지만, 아기가 생겼다! 엄마는 일도 쉬고, 매일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권리가 생겼다. 오늘도 나와 아빠는 마라 떡볶이를 먹으려고 했는데 엄마가 계속 ‘만둣국, 만둣국!’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만둣국을 먹었다.
(이슬아 선생님과 학생의 대화편)
“동생이 태어난다니 축하할 일이네!”
“이번에 임신한 아기는 셋째예요.”
“둘째동생도 이미 있구나. 걔 이름은 뭐니?”
“둘째동생 이름은 아리영인데요. 아리영이 아직 어려서 한글을 잘 못해요. 그래서 걔가 엄마 배를 보고 ‘새끼 가졌다’라고 말해요.”
<제목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아홉 살 제하
우리 아빠는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다. 일단 맛있는 온소바를 해줘서 좋은 놈이다. 그런데 내가 잘못했을 땐 버럭 화를 낸다. 그럴 땐 나쁜 놈이다. 그리고 아빠는 자기가 사실 이순신이라면서 장난을 친다. 이상한 놈이다. 좋고, 나쁘고, 이상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잘해준다. 예를 들면 휴대폰의‘Siri’처럼 나한테 설명을 잘해준다. 그럴 땐 좋은 놈이다. 그렇지만 엄마는 나쁜 놈이다. 왜냐하면 나한테 가끔 짜증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는 이상할 정도로 이상하지 않다. 나는 그 점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다.
이 외에도 글쓰기 선생님으로서, 작가로서 자신의 일을 성찰하는 글들도 참 좋았다.
“아이들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종이 위에서 자기만의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표정 때문에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서로 다른 일기를 쓴다. 그들의 글투를 발견하고 수호하고 추가하는 것이 글쓰기 교사의 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데니즈가 슬펐다고 말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웠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인 나는 데니즈의 눈에 쏟아져들어오는 봄의 장면을 선명히 그려볼 수 있다. 그 아름다움에 상처를 입을 만큼 취약해진 마음에 대해서도 상상해볼 수 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마다 제일 소중한 사람이 옆에 없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실감나서 날마다 새롭게 아플 것 같았다.
이 상상은 나의 몫이다. 내가 슬플 공간을 작가가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데니즈가 슬프다는 핵심 요약 문장을 간단하게 쓰지 않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쓰더라도 작가가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고 나의 글쓰기 스승은 말하곤 했다. 그럼 독자는 울지 않게 될 테니까. 작가가 섣부른 호들갑을 떨수록 독자는 팔짱을 끼게 될 테니까.”
“사실 그들이 들려준 얘기는 모두 조금씩 비극적이었다. 사기와 폭력과 성추행과 부조리와 노화와 수치로 가득한 서사여서, 울면서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은 채로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관객들은 안타까움에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슬픔을 훌적 넘어서는 유머 때문이었다.
나는 동북구연의 여섯 명이 그 얘기를 얼마나 여러 번 다시 말해보았는지를 가늠하게 되었다. 난생처음 입 밖에 꺼내는 슬픈 이야기는 곧바로 유머가 되기 어렵다. 여러 번 말해보고 자꾸 다르게 말해볼수록 그 사건이 품은 슬픔의 농도가 옅어진다. 슬픔 속의 우스꽝스러움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성취는 반복적인 글쓰기의 자기 치유 과정과도 닮아 있다. 나는 치유를 위해 글을 쓰지 않지만 글쓰기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보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 연습을 계속한 사람들은 자신을 지나치게 불쌍히 여기거나 지나치게 어여삐 여기지 않는 채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자기 연민의 늪과 자기애의 늪 중 어느 곳에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완성하여 독자와 관객에게 슬픔과 재미를 준다. 혹은 두 가지를 동시에 준다. 자신 말고 타인이 울고 웃을 자리를 남긴다. 그것은 사람들을 이야기로 초대하는 예술이다. 더 잘 초대하기 위해, 더 잘 연결되기 위해 작가들은 자기 이야기를 여러 번 다르게 말해보고 써본다. 먼저 울거나 웃지 않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교사에게 발언권이 돌아왔을 때 나는 말했다. 좋은 글은 장면을 선물한다고. 읽는 이의 마음속에 몹시 인상적인 이미지를 그려서 글을 내려놓고도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르게끔 한다고. 어떻게 해야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보여줄 수 있을지, 텍스트로 이뤄진 문장을 가지고 이미지의 세계로 가는 방법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해보자고.”
이슬아 작가의 다른 글들이 너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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