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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인문- 심리학/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인생의 판을 뒤집는 아들러의 가르침

by 책연필씨 2021.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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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자 기시미 이치로  출판사 살림

 

우연한 기회로 아들러 심리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 이 책을 왜 구매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나의 책장에 몇 년째 방치되어있었으나, 새해에는 좀 더 발전하는 삶이 되고자 책장을 살피다 찾게 된 책이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꼭 한 번은 읽어 봐야 하는 개인 심리학에 대한 책이다.  왜 이제야 읽게 되었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 책은 아들러가 직접 지은 책은 아니고, 아들러를 공부하는 일본인이 아들러 심리학을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정리 한 책이다. 인상이 깊어서 아들러 심리학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동기 부여가 되는 책이다. 

 

<바쁘신 분들을 위한 요약정리> 

자녀는 독립된 주체입니다.  아들러 개인의 심리학을 통해 자녀의 독립된 주체로 키우는 방법에 대해서 책의 요약으로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어떠한 육아서 보다 큰 가르침을 줄 것입니다.

독립된 주체란 자신이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고 선택, 결정 실행이 자신에 책임 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 또는 타인을 독립된 주체를 설정하고,  본인이 선택, 결정, 책임을 짓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거의 일이 아니라 과거의 일의 해석에 의해서 사람들은 영향을 받는다."  

누구나 신체적 정신적 핸디캡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핸디캡은 열등감으로 표출됩니다. 열등감은 부정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어의 변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열등감은 본인이 본인의 이상의 자아와 비교했을 때 부족함을 느끼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등감이 나쁜 것이 아니고 열등감이 지나처 열등 콤플렉스나 우월 콤플렉스가 부정적인 부분입니다. 열등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부족의 하나의 감정입니다. 인간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를 통해 유전적인 부분을 부여받고, 주양육자의 육아의 방식과 인간관계의 환경에 의해서 성격이 강화됩니다. 
아이의 기질은 5~6세부터 형성되는데, 주양육자의 육아 방식에 따라서 영향을 받는다.  주양육자는 성향은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지배형, 기생형, 회피형, 사회적 유용형 에 따라 아이의 기본 기질이 결정되고, 계속된 성장환경에 따라 강화되거나, 보완된다고 한다. 

지배형 인간이란 타인에 대한 지배와 통제 착취를 통해 자신만의 이익 추구하려는 사람입니다. 지배형 인간형은 자식을 통제형의 방식으로 키우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기생형 인간이란 타인에 대해 빌붙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 하는데 어릴 적 과잉보호를 받으면 기생형 인간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회피형 인간은 소극적이고 불평불만이 많음 부모가 양육할 때 기를 꺾을 때 회피형 인간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사회적 유용형은 성숙한 인간형으로 자신과 타인의 이익을 동시에 추구 하고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기를 때 사회적 유용형 인간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아들러가 말한 4가지 부모 유형 #. 출처 : 유튜버이은주의 심리야 놀자 

 

 

출처 : 유튜버 5분 뚝딱 철학.                                                                                                                                                                   https://www.youtube.com/watch?v=115F8EChRSs&t=98s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고, 인정받기를 바라서도 안 된다. 인정 욕구는 대개 상벌 교육의 영향이다. 칭찬받을 목적으로 특정 행동을 하거나,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시작하며|

모든 인간은 대등한 관계에 있다. 

아들러는 1870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들러 심리학의 특징은 모든 인간관계는 서로 대등하다는 관점에서 시작된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 상사와 부하와의 관계, 선생님과 제자와의 관계 모두 대등한 인격체라고 주장한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라고 얘기한다.  인간관계 해결과 개인 심리학, 열등감, 불안 등에 대해서 아들러의 방식으로 공부하면서 정리해 보겠다. 

삶은 타고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사는 것이다!

저자는 원래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다. 아이가 이상만큼 부모 뜻대로 행동하지 않았는데 정신과 의사인 친구에게 상담을 하면서 추천받은 책이 아들러의 <아이의 교육>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그동안 육아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서 아이를 대했구나 생각하면서 아들러에 대해서 공부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부 인생을 변화시키는 ‘역전의 발상’

 

실천을 위한 심리학 

아들러 심리학을 본인은 “개인의 심리학”이라고” 불렀습니다.  ‘분할할 수 없는 전체'로서 인간을 고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지? 몸이 마을을 지배하는지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아들러는 몸과 마음 모두 인생의 표현이므로 그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고 그 전체 안에서 그것들이 서로 주고받는 상호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태어나 네다섯 살이 되면 아이들은 정신적 추구를 통일하고 마음과 몸의 기본관계를 수립한다. 자신의 정서적・신체적 습관 및 특성과 들어맞는 고정된 생활양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많든 적든 특정 정도의 협력이 포함된다. 그리고 이 협력의 정도를 통해 우리는 개인들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법을 배운다. 모든 실패의 공통분모는 협력하는 능력의 부족이다. 심리학은 협력의 결핍을 이해하는 것이다.  마음은 단일한 통일체이고 삶에 대한 태도는 내내 동일하게 유지되므로 마음의 모든 표현, 개인의 모든 감정과 사고는 자신의 생활양식과 서로 일치해야만 한다. 만일 감정이 문제를 일으켜서 개인의 행복에 역행한다면, 이런 감정을 변화시키려고 애써봤자 아무 소용없다. 감정은 개인의 생활양식에서 우러나온 표현이어서,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는 한 이런 감정을 뿌리 뽑을 수 없다.

신체적 핸디캡의 영향 

아들러는 머리가 우수하고, 건강한 형의 열등감을 느끼고 자랐고, 늘 형의 그늘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형의 그늘에서 구루병에 걸려 건강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도움으로 신체적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발전한다. 

심리학이란 몸의 감각적 인상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해석하는 것이다. 환경에 잘못 적응하여 환경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몸은 대개 마음의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 때문에 신체적 결함을 가진 아이는 발달이 느릴 수 있다.  마음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고, 비슷한 또래와 같아지기 위해 더 강하게 집중을 해야 한다. 마음에 지나친 부담을 떠안게 되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신체적 어려움과 불완전한 활동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아이는 자기 외에는 관심을 쏟을 시간도 자유도 없는 것이다. 결국 아이는 공동체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 협동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이처럼 신체적 핸디캡을 가져다 주지만, 마음이 활달하고, 열심히 극복하려고 노력한다면 일반 아이들보다 더 뛰어난 성취를 할 수 있다. 자신의 핸디캡을 인정하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리비도(성적 동기)가 아니라 열등감이다. 

아들러는 열등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감정이라고 얘기했다. 열등감이 문제가 아니라 열등감을 통해 가져 지는 열등감 콤플렉스와  우월감 콤플렉스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열등감 콤플렉스와 우월감 콤플렉스는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면서 어떤 사람에게는 나는 안될 거야 라는 방식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스스로 우월하다고 꾸미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특히 우월감 콤플렉스를 가지는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명품이나, 브랜드 상품으로 과시를 하는 성향으로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는 ‘나’와 권위를 연결시킴으로써 자신의 공을 자랑하고 뽐내고,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걸핏하면 과거에는 빛나던 추억담을 늘어놓게 된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성적 동기)’가 인간의 성격 특성의 기초라고 했지만, 아들러는 열등감이야 말로 성격 특성의 기초라고 여겼습니다. 

아들러는 신체적으로 약했던 핸디캡을 극복하면서 ‘기관 열등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기관 열등성’은 일상생활의 곤란을 가져오는 신체적 핸디캡을 의미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곳은 결여된 부분을 다른 부분으로 채우려고 한다는 뜻으로 시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후각, 청각, 촉각으로 채우려 하고 이런 것들이 성격 형성이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이런 결함을 신체적, 유전적 조건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그것을 극복해내는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공동체 감각’의 발견 

제1차 세계 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한 아들러는 전쟁을 계기로 ‘공동체 감각’이라는 이론을 생각해 냈습니다. 공동체 감각은 타인을 친구로 보는 의식입니다. 전쟁을 겪으면서 프로이트는 ‘인간에게는 공격 욕구가 있다’라고 결론을 지었다면 아들러는 ‘인간은 친구다’라는 다른 사상에 도달하였습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 받는 것보다 많은 것을 상대에게 주는 것,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누군가 시작해야 한다. 보상이 전혀 없더라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더라도,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공동체 감각은 다음의 3가지로 구성된다.

  • 주위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 ==> 타인에 대한 신뢰
  • 나는 주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다 ==> 자기에 대한 신뢰
  • 그 결과 나는 공동체에 속할 수 있다 ==> 소속감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행복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공동체 감각이다. 따라서 인생 문제에 대한 모든 답은 이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 답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 만약 혼자라면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마련되어야 한다.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1장 인생의 의미, ‘인생의 세 가지 과제’


의미부여를 달리 하면 미래도 달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경험에 ‘의미부여’ 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관점이다. 같은 경험을 해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세계는 전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행동한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똑같이 불행을 경험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나는 불행한 경험을 통해 그것을 피하는 방법을 배웠으니 내 아이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나는 어린 시절에 고통받았고 그것을 극복했으니 내 아이도 극복해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므로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아야 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행한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그 후 삶과 행동이 크게 달라집니다.
어떤 경험이든 그 자체로는 성공이나 실패의 요인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 경험에서 받은 충격(이른바 트라우마)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과거 경험을 가지고 우리 목적에 들어맞는 온갖 것들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과거에 경험한 사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특정 경험을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근거라고 간주할 경우, 필시 잘못된 판단이 되고 만다. 의미는 상황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상황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스스로 결정한다.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1장 인생의 의미, '어린 시절의 경험’)

현재 자신이 살기 힘든 건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 때문이다'라든가 '부모님에게 학대받았기 때문이다'라고, 과거 부모가 자신에게 했던 훈육을 탓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이 우리의 뭔가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반드시 어떤 결과에 이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원인론'입니다. 원인론은 으레 '결정론'이 됩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모든 것은 과거의 사건과 환경에 의해 결정되므로 현재 상황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 사건이 현재 살기 힘든 원인이라고 한다면, 예컨대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꿔야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들러의 '목적론'에서는 세워야 할 목적과 목표가 미래에 있습니다. 과거는 바꾸지 못해도 미래는 바꿀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인생이 우리 뜻대로 다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더 많을 겁니다. 그래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태도는 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거의 경험은 ‘결정 요인’이 아니다

싫어졌다고 생각하자마자 그때까지는 상대방의 장점이라고 느꼈던 것이 단점으로 느껴집니다. 결국 좋아했던 요인은 나중에 지어낸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목적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고 싶지 않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결점을 찾은 것입니다. 장점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관계를 시작하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좋을까?' '왜 싫을까?' 하고 상대방에게서 요인(이유)을 찾는 것은 앞서 아들러가 한 말에서 보았다시피 "과거 경험을 가지고 우리 목적에 들어맞는 온갖 것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결심을 뒷받침하거나 정당화하기 위해 관계를 시작하거나 끝내는 이유를 찾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원인론과 목적론의 차이 

감정의 문제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이 들지만, 어떠한 목적 때문에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감정을 지어낸 것이라고 합니다.  불안이란 감정을 보면 ‘불안해서 바깥에 나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밖에 나가지 않으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어낸 감정이라고 얘기합니다. 

선택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선인지,  무엇이 나에게 이익인지 판단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 판단이 늘 옳을 리 없으니 판단을 하고 나면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나아가 선(나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으면 그것을 선택합니다. 분노에 사로잡혀 벌컥 화를 내던 사람도 자신의 분노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곰곰이 생각야 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 더는 화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를 억누르기보다 분노의 목적과 분노를 대신할 방법을 알아내면 화를 낼 일이 없습니다.

현재가 달라지면 과거도 달라진다. 

과거도 바꿀 수 있습니다. 과거 또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의미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과거 역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억(어린 시절 기억)은 개인이 인생에 얼마나 오랫동안 특정한 접근법을 적용해왔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처음으로 인생에 대한 태도를 수립할 때 어떤 환경이었는지를 밝히는 데 특히 유용합니다. 모든 사람의 초기 기억은 두 가지 이유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첫째, 자신과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내리는 근본적인 평가를 압축해 담고 있다. 자신의 겉모습에 대한 첫 요약 설명이며, 자신에게 가해지는 요구와 자기 자신에 대한 완벽한 첫 상징이다. 

둘째, 자기 마음속에 존재하는 주관적인 출발점, 스스로 써 내려가는 자서전의 시작점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초기 기억 속에서 자신의 나약하고 무능한 위상에 대한 인식과 자신이 이상으로 삼는 힘과 안전이라는 목표 사이의 차이 나는 대비를 발견한다. 심리학의 목적에서는 개인이 고려하는 기억이 실제로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첫 사건인지, 심지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의 기억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기억은 그것이 보여주는 것 때문에, 그것이 인생에 대해 내리는 해석 때문에, 그것이 현재와 미래와 맺고 있는 관계 때문에 중요할 뿐이다.

변하지 않는다? 변하고 싶지 않다?

'의미부여'라는 말을 썼는데, 아들러는 이 세계에 대한 그리고 인생과 자신에 대한 의미부여를 '생활양식(lifestyle)'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래 세 가지를 한데 묶은 신념 체계가 생활양식입니다.

  • 자신은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자기 개념)
  • 타인을 포함한 세계의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세계상)
  • 자신과 세계에 대해 어떤 이상을 품고 있는가(자기 이상)

생활양식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정하는 것이고 5살 무렵에서 10살 전후 형성이 됩니다. 한 번 형성된 생활양식은 쉽게 변하기가 힘듭니다. 아니 변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변화하고 싶다면 자신과의 내면의 대화를 자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생활양식으로 살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나의 이상은 무엇인지를 알고 현재의 모습과 비교를 해야 합니다.

무엇이 생활양식을 정하는가?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다.

생활양식 형성의 결정인자는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부모에서 태어나도 다른 생활양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생활양식을 결정할 때 영향인자로 첫째 ‘유전’입니다. 유전은 부모에게서 받은 신체와 기질을 의미합니다. 기질에 더해 환경에 의해 성격이 완성됩니다. 아들러는 아이의 성격이 부모와 닮은 것은 오래 함께 사는 동안 부모를 모방한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주어진 것보다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핸디캡을 한계라 생각하지 않고 극복을 하기 위해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둘째는 ‘환경’입니다.  환경이란 부모 자식과 형제자매 등 인간관계를 의미합니다. 형제자매의 관계는 부모 자식 간 관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결정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한 경향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첫째의 경우, 태어나서 얼마 동안은 왕자님・공주님처럼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랍니다. 하지만 아래로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태어나면 바로 왕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넌 오늘부터 형/오빠/언니/누나야"라는 부모의 말을 계기로 그때까지 혼자서 하지 못했던 일도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는 등 근면한 노력가가 됩니다. 아이는 혼자뿐인 시기를 한동안 경험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둘째가 태어나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도록 강요당합니다. 맏이는 대개 많은 관심과 떠받듦을 받습니다. 그래서 흔히 가족의 중심이 되는 데 익숙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자기 위치에서 내쫓긴다. 둘째가 태어나면 맏이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이제 맏이는 경쟁자와 부모의 관심을 나눠 가져야 합니다. 문제 행동을 일으키거나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보수적이 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다른 아이의 등장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박탈감을 자신의 생활양식으로 삼는 맏이들이다. 새 아기가 탄생함으로써 첫째가 실제로 무시당한다면 그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앙심을 품더라도 원망하지 못하게 만들 방도가 없다. 그들은 물론 부모가 첫째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확신시켜줄 수 있다면, 첫째에게 동생의 탄생에 대해 신중히 준비시키고 협력하는 훈련을 꾸준히 시킨다면, 이 위기는 별 탈 없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그런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는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첫째로부터 관심과 사랑과 애정을 앗아가 버린다. 첫째는 어머니를 되찾고 어머니의 관심을 다시 끌 방법을 생각해내려고 애쓴다. 때로는 어머니가 이 다툼에 말려들어, 서로 어머니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두 아이 사이에서 끌려다닌다. 첫째는 힘을 쓰는 데 더 능숙하고 새로운 속임수를 더 잘 생각해낸다. 우리가 만일 첫째의 처지라면 할 행동과 정확히 똑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를 걱정하게 만들고 어머니와 싸우려 들고 어머니가 무덤덤하게 봐 넘기지 못할 행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어머니의 인내심을 말려놓는다. 첫째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사용하여 필사적으로 싸운다. 어머니는 골머리를 썩이는 이 문제에 진절머리가 나고, 이제 첫째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어떤 건지를 정말로 경험하기 시작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싸웠지만 끝내는 사랑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뒤로 밀려났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자기 행동 때문에 정말로 밀려나버린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럴 줄 알았어"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틀렸고 자신이 옳다. 이것은 마치 덫에 빠진 것과 같아서, 몸부림치면 칠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 첫째가 자기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은 언제나 확고부동하다. 자신의 모든 본능이 자기가 옳다고 말할 때 어떻게 싸움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중간에 낀 아이는 처음부터 위에 형/오빠/언니/누나가 있고 머지않아 남동생과 여동생이 태어나므로 한 번도 부모의 애정, 주목, 관심을 독점하지 못하고 자랍니다. 부모의 주목을 받으려고 문제 행동을 일으킬지 모릅니다. 거꾸로 부모가 보살펴주지 않아서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등 다른 어느 형제보다 자립심이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태어나면서 다른 아이와 부모의 관심을 공유하면서 자란다. 그래서 첫째보다 협력에 더 익숙하다.  부모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보다 한두 발짝 앞에 있는 첫째를 능가하고 물리치기 위해 끊임없이 갈고닦는다. 둘째는 곧잘 성공을 잘 거둔다. 첫째보다 더 재능 있고 잘 해낸다. 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서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능가하고자 애쓰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성장한다. 둘째 아이는 동생이 태어나 자신의 위치를 상실할지 모르지만 아마 그 상황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미 다른 아이와 협력을 경험해봤기 때문이다. 둘째는 한 번도 관심과 돌봄을 독차지해본 적이 없다

막내는 첫째나 가운데와 달리 "넌 오늘부터 형/오빠/언니/누나야"란 말을 들을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는 의존적인 아이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붙임성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강연이나 강의가 끝난 후 질문을 받으면 맨 처음 손을 드는 사람 중에 막내가 많습니다. 첫째로 자란 사람 중에는 '이런 질문을 하면 다들 웃지 않을까' 망설이느라 손을 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에 비해 막내는 거리낌 없이 질문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배웁니다.

외동아이의 경우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그리 많이 경험하지 않아서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자립심 있는 아이로 자라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동아이의 경쟁자는 다른 형제가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응석을 부리는 아이는 마더 콤플렉스에 걸릴지도 모른다고 아들러는 말합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 : 부모의 가치관이 미치는 영향 

첫 번째는 '가족 가치'입니다. 가족 가치란 학력을 중요하게 여긴다거나 공부는 못해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살면 된다는, 각 가족이 갖고 있는 고유한 가치관을 가리킵니다. 부모의 가치관에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또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선택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아이의 몫이지만 너무 강한 가족 가치는 아이가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두 번째는 '가족 분위기'입니다. 이것은 가정 내에서 뭔가를 결정할 때의 법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권위적이고 가족 안에서 늘 주도권을 쥐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부모와 자식이 대등하다고 여기고 모든 것을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결정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나아가 '문화'도 생활양식을 결정하는 영향 요인이 됩니다. 자란 나라와 지역의 문화에 따라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에 큰 차이가 납니다.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 내기 

"당신은 당신 자신을 좋아합니까?"라고 물어봅니다. 대개 "싫어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왜 그렇게 대답할까요?  첫째는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상벌 교육'을 받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상벌 교육이란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하고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주는 교육법을 가리킵니다. 교사와 부모가 아이의 결점과 단점에만 주목하면 아이는 늘 야단맞으면서 자라므로 어른이 되어도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못합니다.

또 하나는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해서 자신감이 생기면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 같은 건 매력이 없어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을 싫어하자'라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먼저 결과가 어떻든 인간관계에 들어갈 '용기'를 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고민의 원천입니다. 하지만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 또한 얻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 하지 못하는 이유, 하지 않는 이유를 과거 경험이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생활양식을 선택하는 사람은 자신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선택했다면 언제든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상황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면 간단합니다. 하지만 생활양식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아들러는 강조합니다.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겠다는 결심을 버리면 생활양식은 변할 것입니다.  단, 결심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먼저 무의식 중에 몸에 밴 자신의 생활양식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때까지와는 다른 생활양식을 선택합니다. 다만 그전에 어떤 생활양식을 선택하면 좋을지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2부 자신을 괴롭히는 것의 정체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보편적 욕구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선)을 추구하면서 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아들러는 이것을 ‘우월성 추구’라고 합니다. 우월성 추구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무력감을 안고 태어나서 계속해서 모방을 통해 학습하고 발전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월성 추구와 짝을 이루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두 가지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어느 쪽이든 노력과 성장을 위한 자극이 됩니다. 열등감이란 남과 자신을 비교할 때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열등감은 이상 속 자신과 현실의 자신의 비교에서 생기는 것이다. 열등감이라 말로 모든 진보의 원동력이라고 아들러는 말한다. 하지만 너무 강한 열등감을 ‘열등 콤플렉스’ 지나친 우월성의 추구를 ‘우월 콤플렉스’라고 하며 둘 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겉보기 인과율’과 ‘인생의 거짓말’에 현혹되지 마라 

열등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하지 않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으며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려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열등 콤플렉스는 열등감을 '핑곗거리'로 삼는 것을 가리킵니다. 열등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A라서 B를 하지 못한다'거나 'A가 아니라서 B를 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일상생활에서 입버릇처럼 늘어놓습니다. 그들은 트라우마나 신경증 같은 자타공인 부정할 수 없는 핑계 A를 대서 B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열등 콤플렉스는 실제 인과 관계가 없는 사안을 연결하는 '겉보기 인과율'을 내세워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면홍조증 환자에게 다 나으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물어보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안면홍조증이 남자를 사귈 수 없다’고 믿고 있지만, 실제론 고백했다 차이는 것 두려워서다 다시 말해 인간관계를 회피하기 위한 이유(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본래 열등감은 건설적으로 밖에 나아질 수 없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계속해서 노력하고 극복해서 채워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하지 않는 이유, 할 수 없는 이유만을 찾고, “만약~라면”이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하면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남겨 두고 싶기 때문에 노력했다가 바라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우수할지도 모른다는 가능 속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즉 우월 콤플렉스가 있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동물원 나들이를 간 세 아이의 사례로 이를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세 아이가 사자 우리 앞에 서 있을 때 한 아이는 어머니 치마 뒤로 숨으면서 "나 집에 갈래"라고 말한다. 두 번째 아이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벌벌 떨면서 "난 하나도 안 무서워"라고 말한다. 세 번째 아이는 사자를 무섭게 노려보며 "나 저놈한테 침 뱉어도 돼?"라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세 아이 모두 실제로는 두렵지만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자기 생활양식을 따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3장 열등감과 우월감, '열등 콤플렉스'

당신 생각만큼 당신에게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정말 우월한 사람은 자신을 과시하거나 자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월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기를 쓰고 자신을 실제보다 커 보이게 만들려고 합니다. 학력과 직책을 과시하는 사람, 값비싼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는 사람, 과거의 영광에 매달려 잘 나가던 시절 이야기만 하는 사람, 아는 사람의 공적을 마치 자기 일처럼 자랑하는 사람도 우월 콤플렉스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유독 강조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과시하려는 사람에게는 실제로 자신이 우월한지 아닌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저 "남보다 우월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 쓰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들에게 기대하고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에 대한 이상을 높입니다. 나아가 타인이 기대하는 자신의 이미지와 현실의 자신이 너무 차이가 나면 우월해지려는 노력마저 단념하게 됩니다. 또 우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 중에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치를 깎아내림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집단 괴롭힘이나 차별 역시 우월 콤플렉스의 특징인 가치 감소 경향이 있는 사람이 주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사람, 차별하는 사람은 강한 열등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차별하여 상대적으로 우위에 서려는 것입니다. "그러지 마세요. 인간적으로 부끄러운 짓입니다. 제발 그만두세요"라고 말려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집단 괴롭힘이나 차별을 없애려면 괴롭히는 사람, 차별하는 사람 본인이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줘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괴로운 인생을 살아왔는지 ‘불행 자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우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얼핏 이런 불행 자랑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비하하고 낮추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월 콤플렉스・열등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어떤 방법을 써도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저라면 불합리한 이유로 들들 볶는 상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위축되지 말고 평소 남들한테 하는 대로 대하세요"라고 조언하겠습니다. 상사가 하는 말이 맞았을 때는 받아들이고 틀렸다고 느낄 때는 반론하면 그만입니다. 대등한 인간으로 대하되 위축될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일할 때는 누가 말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는지에만 주목하면 됩니다. 

지금의 자기 모습을 알아차리자 

어떤 목적 때문에 우월 콤플렉스나 열등 콤플렉스에 빠지게 되는 걸까요?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물리적인 가치를 높여서 자기만족을 얻으려고 하거나,  잘못된 관심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공부를 알아서 잘하는 아이에게는 신경을 덜 쓰지만, 가장 공부를 게을리함으로써 관심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 상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건전한 열등감이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상과 비교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잘못된 우월성 추구는 ‘경쟁’이다. 경쟁은 정신건강을 헤치는 가장 큰 요인입니다. 이겨도 언제 간 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진실로 인생의 문제와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자신의 추구에서 다른 모든 이들을 풍요롭게 하는 사람, 다른 이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밀고 나아가는 그런 사람입니다. 

모두가 제각각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기준은 자신입니다. 누구에게 추월당한다 한들 지금 자신의 위치에서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갈 수 있다면 건전한 우월성 추구입니다.  누군가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그저 앞을 향해 한발 나아가자고 의식하자고 걸으면 됩니다. 

아들러가 말하는 “인생의 문제를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우월성 추구의 본질입니다. 



3부 인간관계 전환하기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혼자 산다 면 거기에는 선악도 필요 없고 말도 필요 없습니다. 조리 있게 말할 필요도 없어 논리도 필요 없습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반드시 마찰이 생기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배신당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워 타인과의 관계를 맺지 말자고 생각합니다. 점점 타인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목적을 강화시킵니다. 

인간관계는 고민의 원천이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 또한 인간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피하려고 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관계의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밖으로 나가 피할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시 해야 합니다. 타인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여겨야만 합니다. 그러면 인생은 크게 달라집니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다’라는 착각 

광장 공포증이란 바깥 세계가 두려움을 느끼고 집에 틀어박혀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는 신경증의 일종입니다. 밖으로 나오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바깥세상이 무서워라기보다 집안에 있는 한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중심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에선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기에 그게 두려워 나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들의 시선이 두려운 것 같지만 반대로 모두에게 주목받고 세계의 중심에 서기를 바랍니다.

어린 시절 오냐오냐 하며 응석을 받아주는 부모 밑에서 모든 것을 받고 자란 아이는 머지않아 타인에게 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고, 타인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지에만 관심을 갖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해주면 기분 좋아하지만, 한 번이라도 그렇지 않은 현실에 직면하면 기분 나빠하고 때로는 공격적이 됩니다.

주목받고 싶은 아이 

야뇨는 몇 가지 목적에 도움된다. 주목을 끌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낮뿐 아니라 밤에도 주목받을 수 있다.(『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2장 마음과 몸, '마음과 몸의 상호작용')

아이가 야뇨증에 걸려 상담을 받으러 오면 저는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이제부터 야뇨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하세요. '자기 전에 차가운 음료수 먹지 마'라든지 오줌을 싸지 않은 다음 날 아침에 '오늘은 오줌 안 싸서 다행이야'라는 등 야뇨와 관련된 대화는 앞으로 일절 하지 마세요."

이렇게 조언하는 이유는 부모가 아이의 야뇨에 주목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부모는 아이에게 빨랫감을 세탁기 옆 빨래통에 넣어두라고 말합니다. 아이 옷이 빨래통에 들어 있으면 세탁합니다. 오줌을 싸서 젖은 옷이든 시트든 아이가 빨래통 안에 넣으면 빨고 그러지 않으면 빨지 않습니다. 야뇨에 대한 책임을 지는 한, 밤중에 오줌 쌀 권리를 아이에게 오롯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 세 살짜리 아이가 입이 짧아서 고민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한 어머니의 문의를 받았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 어머니는 조금이라도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서 사과를 토끼 모양으로 깎거나 식단을 소풍 도시락처럼 꾸미는 등 여러 가지 방도를 궁리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더는 아이만 특별 취급하지 마세요. 가족이 함께 먹을 음식을 커다란 그릇에 담아 내놓고 직접 덜어 먹게 하세요. 만약 아이가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만 부리면(잘 안 먹으려 드니 그런 걱정은 필요 없겠지만) 주의를 줘야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아이가 얼마나 먹는가에 대해서는 아예 주목하지 마세요."

주목하지 말라기보다는 큰 그릇에 담아 내놓음으로써 아이가 얼마나 먹는지 마음 쓰지 말라고, 아예 신경을 끊으라고 조언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이 조언을 충실히 지켰고 일주일쯤 지나자 아이는 밥을 잘 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관심 끄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에서 금방 전문가가 된다. 예를 들어 응석받이 아이는 흔히 어두운 데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한다. 이 아이가 두려워하는 건 어둠 자체가 아니다. 어머니를 자기 곁에 더 가까이 오게 만드는 수단으로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 응석받이 남자아이는 캄캄하면 늘 울었다. 어느 날 저녁,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와서 물었다. "무엇 때문에 무서워하는 거니?" 아이가 대답했다. "너무 캄캄해." 하지만 이 어머니는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는 목적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럼 내가 오면 덜 캄캄해지니?" 어둠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이가 어둠을 무서워하는 건 어머니와 떨어지길 싫어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 아이의 모든 감정, 모든 힘, 모든 정신력은 어머니가 다시 자기한테 와서 옆에 있어야 하는 상황을 설정하는 데 온통 매달린다. 아이는 울고, 소리치고, 잠을 못 이루고, 다른 사람들을 성가시게 함으로써 어머니가 자기 곁에 오도록 만들려고 애쓴다.

오랫동안 교육자와 심리학자의 관심을 끌어온 한 가지 감정이 바로 두려움이다. 개인심리학에서는 더 이상 두려움의 원인을 찾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에 두려움의 목적을 밝히는 데 주력한다. 모든 응석받이 아이들이 두려움에 시달린다. 이 아이들은 두려움을 통해 관심을 끌 수 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생활양식으로 삼는다.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6장 가족이 미치는 영향, '주의와 무시'

아이가 오줌을 싸거나 밥을 잘 안 먹어도 부모가 더 이상 주목하지 않으면 아이의 의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오줌 싸지 마"라든지 "더 먹어"라고 잔소리를 듣는 한, 아이는 자신이 부모에게 주목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세계(가정)의 중심이다'라고 느낍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듣지 못하면 상황은 백팔십 도 달라집니다.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느낀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지만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프고 젖은 시트를 그대로 두면 다음 날도 축축한 이불에서 자야 합니다

단, 이런 대응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두 가지 문제인데 하나는 부모가 평정심을 잃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젖은 옷이 빨래통 안에 들어 있지 않아도 개의치 않겠다고 하지만 젖은 시트와 잠옷이 그대로 있으면 안절부절못합니다. '주목하지 말아야 해'라고 의식하면 도리어 아이의 야뇨증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밥을 잘 안 먹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하나는 오줌 싸기와 밥 안 먹기로 부모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이가 다른 수단을 찾아내는 경우입니다. 부모가 신경 쓰지 않으면 축축한 잠자리에 자기 싫어서 오줌을 싸지 않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대응만으로는 오히려 사태가 악화되어 더 못된 행동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밤중에 오줌을 싸면 부모에게 주목받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해도 주목받지 못하고 나아가 부모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아이는 뭔가 다른 계략을 꾸밀지도 모릅니다.

관심을 끌기 위한 속임수의 레퍼토리는 무척 다양하다. 어떤 아이들은 잠옷이 불편하다고 하거나 물을 자꾸 찾는다. 또 어떤 아이들은 도둑이나 괴물을 무서워한다. 또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곁에 없으면 잠을 못 잔다. 꿈을 꾸거나,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침대에 오줌을 싸는 아이도 있다. 
병도 응석받이 아이에게는 흔히 도피처가 된다. 아프면 어느 때보다 더 응석을 잘 받아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는 병이 낫자마자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얼핏 보기에는 병이 아이를 문제아로 만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병이 나았을 때 자신이 아플 동안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호들갑을 아이는 기억하고 있다. 이젠 응석을 부려도 어머니가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다. 그러자 아이는 문제아가 됨으로써 어머니에게 복수한다. 때때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병났을 때 어떻게 해서 관심의 중심이 되는지를 알고 나면 일부러 병에 걸리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심지어 자신에게 병이 옮도록 아픈 아이와 뽀뽀를 하기까지 한다.
『인생의 의미의 심리학』, 제6장 가족이 미치는 영향, '주의와 무시'

타인의 인정은 필요한가 

응석받이로 자라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자란 아이는 인정의 욕구가 있을지 모릅니다.  타인에게 칭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지?’라고 짜증을 내거나 ‘다시는 안 해’라고 하면서 회피하게 됩니다. 

인정의 욕구가 생기는 이유는 응석받이로 자라는 환경의 영향과 상벌 교육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칭찬을 받지 않으면 올바른 행동일지라도 하지 않습니다. 삶이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닙니다. 인정 욕구가 있는 사람은 '테이크(받는다)'를 기본으로 생각하지만 산다는 것은 '기브 앤드 기브(give and give)'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겠지만, 공헌 감을 느끼면 인정 욕구는 저절로 사라집니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는 세 가지 방법 

첫 번째 타인에게 관심 기울이기. 가능한 한 타인의 시점에서 봐야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살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안 좋게 볼까 봐 두려워서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려고 사는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닙니다 자기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으면 인정의 욕구가 사라집니다. 

셋째는 과제의 분리입니다. 어떤 일이 최종 결말이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최종적으로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면 누구의 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과제의 분리: 이것은 누구의 과제인가 

저는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고민이라며 상담을 요청하는 부모들을 자주 접합니다. 그럴 때 공부를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누구의 과제인가를 가장 먼저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즉 공부하지 않으면 곤란해지는 것은 누구인가, 공부하지 않았을 때 그 책임을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보면 답은 명백합니다. 공부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의 과제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아서 진학이나 취직에 어려움을 겪어도 곤란한 것은 부모가 아닙니다.

인간관계에서 문제는 다른 사람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해 들어감으로써 일어납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에게 "공부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는 애초에 아이의 과제이니 그런 말을 할 이유도 없습니다. 한동안 공부에 관한 화제는 꺼내지 말고 상황을 지켜보기를 권합니다.

 여태까지 "공부해"라고 말해도 듣지 않았으니 사실상 아이가 거기서 더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쉽게 상상할 수 있듯이 부모가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않으면 더 공부를 안 할 겁니다. 실제로 일주일 뒤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면 "역시나 공부를 안 합니다"라고 부모는 대답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안 해서 난감하다고 하는데, 그럴 때 전 난감한 건 아이지 부모가 아님을 확인시켜줍니다. 아이가 진심으로 자신에게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부모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할 겁니다. 아들러는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는 이 이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과제의 분리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인정 욕구나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의식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다른 사람의 과제입니다. 이 경우 다른 사람의 과제에 개입할 수 없다 함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인정받고 싶다 해도, 마치 아이에게 공부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그러하듯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앞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하자면 다른 사람은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타인과 협력해야 해낼 수 있는 과제도 있다 

도저히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과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누군가가 도와 달라고 할 때 최대한 협력하는 것을  ‘공동과제 삼기’라고 합니다. 

아이가 힘든 일을 부모나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부모가 승낙을 해서 공동 과제로 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최대한 본인이 해결하도록 노력하도록 가이드를 하고 나서 도와줘야 합니다. 인생의 과제에서 눈앞에 큰 벽을 만났을 때 도망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서 성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입니다. 절대로 대신 수행해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사나 부모 입장에서 먼저 공동과제로 삼자고 얘기하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도우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뜻대로 조작하고 지배하도록 강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부 자신과 타인에게 용기 불어넣기 

공동체 감각이란 무엇인가

공동체란  자신이 소속된 가족, 학교, 직장, 사회, 국가 이자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 나아가서는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지 않은 것까지 포함한 우주 전체를 가리킨다. 

인생의 의미는 전체에 대한 공헌이다. 
인생의 의미는 공헌, 타인에 대한 관심, 협력이다. 

우리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개인으로서는 나약하고 한계가 있기에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행복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이 공동체 감각이다. 

모든 것은 자기 수용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받아 드리려면 ‘나는 특별히 좋거나 나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동체 감각이라는 세 가지 관점 

첫 번째 자기 수용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받아들이는 한 가지 방법은 단점을 장점으로 치환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때만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타인 공헌 감입니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게 공헌한다고 느낄 때 자신을 가치 있다고 여길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타인 신뢰입니다. 신용이란 조건을 달고 인간을 믿는 것이고, 신뢰란 무조건 다른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이상 세 가지는 순환을 이룹니다.  자신을 받아 드리려면 공헌 감이 있어야 하고, 공헌 감이 있으려면 타인을 신뢰해야 하고, 타인을 신뢰하려면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이에게 신뢰할 수 있는 ‘타인’을 처음 경험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야단치지 않고 용기 불어넣기 

야단맞고 자란 아이는 성장해서 타인의 눈치에만 기울이게 됩니다. 
교육계에서는 야단치기와 칭찬하기가 중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러는 둘 다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야단치지 않는 것은 방임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이가 배워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하는 존재이며 실패를 할 때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실패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의논을 하고 본인이 결정하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야단치는 것은 빠르게 지배할 수 있지만 본질을 고칠 수는 없고 타인의 눈치를 살피게 됩니다. 인간이란  본래 각자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이 튀어나온 부분이 개성입니다. 뾰족 튀어나온 부분이 단점이라 야단쳐서 교정하려 들면은 착한 아이로 자랄 수는 있지만 스스로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는 자랄 수 없습니다. 

칭찬하지 않고 용기 불어넣기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하는 평가입니다. 칭찬받고 자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인정받기를 기대합니다. 칭찬하는 것도 야단치는 것도 아이를 대등한 관계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이가 심부름을 해준 경우에도 어른과 마찬가지로 고마워라고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잘했어가 아니라 고마워라고요 부모에게 “고마워 한숨 돌렸네”라는 말을 들으면 아이는 부모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공헌 감을 느낍니다. 

언제나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다

야단 맞거나, 칭찬받으며 자란 아이는 언제나 야단맞지 않으면, 칭찬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만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에 대한 견해와 타인에 대한 견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다르게 보입니다. 그러면 생활양식이 바뀔 수 있고 다른 자신으로 교환할 수는 없어도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부모든 아이든 상사든 부하든 성별이 무엇이든 우리는 대등한 수평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위아래가 없고 누가 누구를 수단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습니다. 어떻게 자랐든,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던 그 어떤 것의 지배도 받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이 진정한 민주주의 이자 “개인의 행복과 인류의 행복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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