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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S 다이어리

[추천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by 책연필씨 2021.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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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박완서님이 작고하신지 10년이다. 이 책은 작가 타계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박완서 작가가 집필한 660여 편의 에세이 중 고르고 골라 대표할 만한 35편의 글을 한 권에 담았다고 한다.

 

 

박완서 작가님은 작품 활동을 상당히 많이 하신 분이다. 소설도 많고 산문도 많고. 특히 이번 에세이집은 40년간의 작품들 중에서 이것저것 모아서 시대상이 다양하다. 하지만 읽으면서 거리감이 느껴진다거나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요즘은 에세이집이 참 많이 출간된다. 힐링 에세이, 위로 에세이, 사랑 에세이 등등. 그렇지만 맘에 드는 에세이집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썩 다가오지 않는 글들도 많고, 했던 이야기 자꾸만 되풀이 하는 글들도 많고.

 

그렇지만 오래 글을 쓰신 작가님들의 에세이는 좀 다른 것 같다. 특히나 소설을 쓰시는 작가님들의 글은 훨씬 더 부드럽게 읽히고 자연스럽다. 짧은 글 속에서도 문장 하나하나가 꼭 필요한 자리에 있는 듯하다.

 

이번 박완서 작가님의 에세이는 작가님 주변의 일상 이야기, 작가님 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님 옆에서 작가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고, 작가님의 일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작가님의 엄마, 할머니가 자주 등장해서 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계획한 시간을 예기치 않은 일에 빼앗길까 봐 인색하게 굴다 보니 거의 시계처럼 살려니 꿈이 용납되지 않는다. 낮에 꾸는 꿈이란 별건가. 예기치 않은 일에 대한 기대가 즉 꿈일 수 있겠는데 나는 그걸 기피하고 다만 시계처럼 하루를 보내기에 급급하다.

시계처럼 산다면 제법 정확하고 신용 있는 사람 티가 나지만 시계가 별건가. 시계도 결국은 기계의 일종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이 기계처럼 살아서 어쩌겠다는 걸까.

(…)

조금 덜 바빠져야겠다. 너무 한가해 밤이나 낮이나 꿈만 꾸게는 말고, 가끔가끔 단꿈을 즐길 수 있을 만큼만 한가하고 싶다.”

 

- <꿈> 중에서

 

 

 

“엄마한테 귀가 따갑게 들은, 남의 좋은 점을 찾아내면 네 속이 편하고 네 얼굴도 예뻐질 거라는 엄마의 잔소리는 철들고 어른 되어, 엄마한테 그런 소리를 안 듣게 된 후에 오히려 더 자주 생각나고, 어떡하든지 지키고 싶은 생활신조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나한테 하신 것과 똑같은 잔소리를 내 아이들에게 하게 되었고, 내 성질까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는 것도 노력과 훈련에 의해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으니 누구나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남의 좋은 점만 보기 시작하면 자기에게도 이로운 것이, 그 좋은 점이 확대되어 그 사람이 정말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입니다. 믿을 수 없다면 꼭 한번 시험해보기 바랍니다.”

 

- <행복하게 사는 법> 중에서

 

 

 

“내가 너한테 어떤 정성을 들였다구. 아마 들인 돈만도 네 몸무게의 몇 배는 될 거다. 그런데 학교를 떨어져 엄마의 평생소원을 저버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장가들자마자 네계집만 알아. 이 불효막심한 놈아.”

이런 큰소리를 안 쳐도 억울하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만 아이들을 위하고 사랑하리라는 게 내가 지키고자하는 절도다. 부모의 보살핌이나 사랑이 결코 무게로 그들에게 느껴지지 않기를, 집이, 부모의 슬하가,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마음 놓이는 곳이기를 바랄 뿐이다.

 

-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중에서

 

 

 

“할머니, 왜 달이 나만 따라다녀?”

나는 대답 대신 녀석을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내 가슴으로 녀석의 건강한 가슴의 고동을 느꼈다. 그때 나는 녀석의 할미가 아니라 녀석의 친구였다.

(…)

날이 어둑어둑 저무는데도 기다리는 어른은 안 오시고 별안간 무서운 생각이 들어 동네를 향해 달음질칠 때 물빛 하늘에 달이 떠 있어 나를 따라오면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저 달은 내가 천천히 걸으면 천천히 따라오고 달음박질치면 같이 뛰고 일부러 걸음을 멈추면 저도 느티나무 가지에 걸렸건 동산 위에 떴건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있다.

그 최초의 인식이야말로 자연과의 교감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달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걸 알고부터는 내가 쓸쓸할 때는 달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기쁠 때는 달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고향집을 떠나 처음 서울에 와서 산동네 빈촌에서 마음 붙일 곳이 없었을 때 달이 서울까지 나를 따라왔다는 걸 발견하고는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던가.

 

- <달구경> 중에서

 

 

한동안 너무 딱딱한 책들만 읽다가 오랜만에 따뜻한 에세이를 읽으니 기분도 편안해지고 조금은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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