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도서] 폴리매스(POLYMATH) – 와카스 아메드
폴리매스
: 박식가. 여러 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알고 있는 사람.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며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
좀 학술적인 책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저자의 많은 연구를 통해서 역사적으로 뛰어났던 많은 폴리매스들과 현재의 위대한 폴리매스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지금의 현실 상황에 대해서도 한숨을 쉬며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 입장에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너무나 많은 부분이 작가가 연구한 폴리매스들에 대한 페이지라서 학술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지않았나 한다.
책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본다.
시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지식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난다. AI나 로봇 등이 사람이 하는 일을 빠른 속도로 대체할 거라고 한다. 요즘 시대는 한 가지만 잘해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폴리매스’라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인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잠재력을 타고 난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리며 세상에 영향력을 미친 이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 어째서 부모나 학교, 고용주들은 우리가 지닌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제한하고 ‘한 우물’만 파는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는가? 오랜 세월 한 우물을 파는 ‘전문가’가 되어야 진리를 발견하고, 자아를 찾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어서다. 하지만 전문화 시스템은 이미 시대에 뒤처진 시스템으로 무지와 착취와 환멸을 조장하고, 창의력과 기회를 억누르고, 성장과 발전을 방해한다.”
어렸을 때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하지만 학교를 들어가는 순간, 똑같은 교육 과정에 던져지게 되고, 서로 연계가 되지도 않는 겉핡기식 교육을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똑같은 과정을 조금 더 잘 해보겠다고 경쟁하게 된다.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교육 제도인 대중교육은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에 필요한 노동자를 양성할 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과 과정은 애초에 노동자들이 사용설명서 정도 읽을 줄 알고 생산라인에 특정 업무에 숙달할 수 있도록 가르칠 목적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교과 과정을 과목별로 분화해 서로 연계시키지 않고 교육했고, 마치 공장 생산라인에 놓인 제품을 취급하듯이 학생들에게 단계별로 필요한 지식을 주입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에는 세계 곳곳에서 ‘업무 혹은 직업의 전문화’가 시작되었다. 제국주의가 촉발한 정부 관료제와 산업화가 촉발한 회사 제도. 이 두 강력한 축에 의해 직업은 갈수록 세분화되었다. 이 두 제도는 서구(유럽인과 미국인) 패권을 지탱하는 시스템에 의해 전 세계에 전파되었고, 분업에 의존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우리 사회에는 한 우물만 깊이 파도록 강요하는 문화가 팽배하고, 어느 분야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우물 밖으로 빠져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일종의 노예제로서 우리는 무언의 굴레에 매여 있다. 전문가를 추종하는 문화 속에서 노동자들은 평생 한 직업에 충실한 것만이 자신이 생존하고 발전하는 유일한 길임을 좋게 말해, 기꺼이 수용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직업에 대해 환멸감과 허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인공지능 덕분에 수많은 정보를 축적하고 정리해야 하는 과중한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기술 전문화 영역은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미래의 지식에서 생물적 뇌가 담당할 영역은 다채로운 지식을 동시에 이용하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여러 지식을 통합하고, 정리하고, 융합하고, 연결하여 인간의 고유한 지혜와 이해를 수립하는 일이라야 한다.
명쾌하게 규정할 수 있는 일자리들은 자동화에 대체될 위험이 크고, 규정하기 힘든 일자리들은 기계로부터 안전한 편이다. 폴리매스는 후자에 해당하는 일을 처리한다. 폴리매스가 미래에 중요한 까닭은 기계가 쉽게 해독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는 데 능통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일자리들을 창출하는 일에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전문화 시스템은 진리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방법도 아니며, 생존을 위해서도 좋은 전략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폴리매스를 길잡이 삼아 정신을 재구성하고 목적의식을 찾지 않는 한 호모 사피엔스는 향후 200년 내에 사라질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그런 특이점이 실현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때까지 몇 십 년간은 인간 교유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다시 확립할 시간이 있다. 전문화 시스템은 오히려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기계화할 뿐이어서 이 전략으로 미래의 기계와 경쟁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다시 말해, 과도한 전문화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삶의 참다운 목적을 놓치고 있다.
전문화는 ‘당연하고 마땅한 것’이 아니다. 전문화로 이득을 보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시스템일 뿐이며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이 미래를 발전시킬 길이라고 믿었다. 정부와 기업, 미디어를 지배하는 계층이 주입하는 전문화 예찬론을 우리는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스템은 자아실현을 방해하고, 창의성을 옥죄고, 생존 능력을 떨어뜨린다. 무지와 편견을 조장하고, 일차원적이고 단조로운 삶을 제공한다.
이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사고방식을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는 원래의 자아, 즉 잠들어 있는 폴리매스 기질을 찾아 자신을 개발하고 성장시킬 대안을 찾아야 한다.